top of page

대림절묵상(20241213) | 시편 110:1-3, 히브리서 5:5-6, 19-20, 7:1-17

  • Writer: HYUK CHOI
    HYUK CHOI
  • Dec 12, 2024
  • 2 min read

[묵상]


영원한 대제사장으로 오신 예수님


성경에는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제사에 대한 내용이 나옵니다. 제사는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의 한 방식으로, 이를 관할하는 대제사장과 제사장들이 있었습니다. 대제사장은 이스라엘 백성을 대표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의 모든 일을 지휘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선지자로 이 땅에 오셨을 뿐만 아니라 대제사장으로도 오셨습니다(히브리서 5:5). 예수님과 다른 대제사장들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점이 있습니다.


대제사장들은 이스라엘 백성과 자신을 위한 속죄제(죄 용서를 구하는 제사)를 드렸습니다(히브리서 5:3). 그러나 예수님은 죄가 없으셨기에 자신을 위해 속죄제를 드릴 필요가 없으셨습니다(히브리서 4:15). 또한 대제사장들은 매년 제물의 피를 가지고 지성소에 들어가 죄 용서를 구해야 했습니다(히브리서 9:27). 반면 예수님은 자신의 피로 단번에 하나님께 나아가 인류의 죄를 속하시며 영원한 구속을 이루셨습니다(히브리서 9:12, 26; 10:10).


예수님은 대제사장으로서 하나님께 인간의 죄를 속하기 위한 제사를 드리셨을 때, 동물이 아닌 자신을 제물로 삼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위에서의 죽음이 바로 속죄제입니다. 인간이 가진 죄와 죽음의 무게는 예수님의 생명으로만 대신할 수 있을 만큼 크며, 인간의 힘으로는 결코 해결할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사도행전 4:12). 그러므로 우리는 그분께 감사와 찬송을 올려야 합니다(시편 100:1-5).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 주신 천국 소망은 우리 영혼의 닻입니다(히브리서 6:19). 이 닻은 우리가 삶에서 마주하는 어떤 폭풍우에도 흔들리지 않고 견고하게 우리를 붙들어줍니다. 닻은 평소 잔잔할 때는 그 중요성을 깨닫지 못하지만, 폭풍우가 몰아칠 때 배를 안전하게 지키는 역할을 합니다. 대제사장으로 오신 예수님은 우리 영혼의 닻이 되셔서 우리의 영혼을 끝까지 지켜주십니다.


사람은 살다가 폭풍우를 만나면 어디엔가 닻을 내리게 됩니다. 스스로를 안전하게 지켜줄 무언가를 의지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닻으로 삼고 있습니까? 혹시 예수님 대신 다른 것들을 닻으로 삼고 있지는 않으신가요? 일시적인 것들은 소망이 될 수 없으며, 영혼의 닻이 될 수도 없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분, 영원한 생명을 유지하는 능력을 가지신 예수님만이 우리의 영혼의 닻이 되십니다.


  • 내일 묵상 말씀 - 이사야 53:1-3, 마태복음 2:1-11, 요한복음 1:1-13, 로마서 10:13

 
 
 

Recent Posts

See All
매일묵상(20260112): 마태복음 3장 13-17절

[묵상] 사랑받는 자 우리는 새해를 “서로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으로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서로 사랑하려고 하면 쉽지 않다는 걸 금방 느끼게 됩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우리가 자주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잊고 살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지치고, 비교하게 되고, 스스로를 부족하게 느낄 때 사랑은 더 어려워집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요단강에서 침례를 받으

 
 
 
매일묵상(20260105): 요한복음 13장 34-35절

[묵상] 서로 사랑하라 오늘은 2026년의 첫 주일입니다. 새해가 되면 우리는 서로 이렇게 인사를 나눕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이 인사 속에는 참 많은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올해는 조금 덜 아프고, 조금 덜 외롭고, 조금은 더 괜찮은 한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새해가 되면 우리는 여러 결심을 합니다. 운동을 해보겠다고 다짐하고, 관계

 
 
 
매일묵상(20251229): 히브리서 2장 18절

[묵상] 나의 갈 길 다 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한 해의 끝에 서면 누구나 비슷한 질문을 합니다. “나는 잘 살아온 걸까?” 계획대로 풀린 일도 있었지만, 뜻밖에 막힌 길과 설명하기 어려운 순간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의 갈 길 다 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이 고백은 결과가 좋았다는 말이 아니라, 어떤 순간에도 예수님

 
 
 

Comments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