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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YUK CHOI

묵상(20230113) - 요한복음 5장 1-9절

일어나 걸어라


오늘 본문의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예루살렘에 베데스다라는 이름을 가진 연못이 있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베데스다 연못에 대한 한 가지 소문이 있었습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 연못의 물이 움직이는 날이 있었는데, 사람들은 천사들이 그렇게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연못의 물이 움직일 때 제일 먼저 들어가는 사람은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된다는 믿음도 함께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아픈 사람들이 소문을 듣고 모여 들었습니다.


오늘의 주인공인 38년 된 병자도 그 중에 한 사람이었습니다. 이 사람도 병이 낳기를 바라고 베데스다 연못을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그에게는 기회가 오지 않았습니다. 물이 움직일 때 가장 먼저 들어가는 한 사람만이 병이 낳을 수 있었는데, 이 사람은 병이 심해서 그런 지 매 번 기회를 놓쳐 버렸습니다.


베데스다 연못이라는 곳도 ‘선착순의 논리’가 지배하는 곳이었습니다. 물이 움직이지 않을 때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두런두런 나누던 좋은 사이인데, 물이 움직이는 순간 모든 것이 아주 시끄럽고 혼란해집니다. 모두가 경쟁 상대가 되고, 자신보다 먼저 연못에 들어간 사람은 원수가 되어 나쁜 놈이 되고, 원망의 대상이 됩니다. 치열한 생존경쟁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어느 날 찾아 오셨습니다. 그에게 묻습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오래된 병자에게 낫고자 하느냐라는 질문은 대답이 필요없는 질문입니다. 38년 동안 고질병으로 고생한 사람의 갈망은 너무나 명백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러한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그렇다면 이 질문 안에는 숨겨진 또 다른 질문이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예수님이 물으셨습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물이 움직일 때 나를 못에 넣어줄 다른 사람이 없습니다.” (원망합니다.) / “네가 낫고자 하느냐?” “내가 가는 동안 다른 사람이 먼저 갑니다.” (비교합니다.) / “네가 낫고자 하느냐?” “다른 사람들 때문에 내가 고침을 받지 못합니다.”(핑계를 댑니다.) 자기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없습니다. 다 남 이야기입니다. '남들 때문에 내가 이 모양 이 꼴입니다. 남들이 연못에 들어가 병이 나을 때, 나는 구경꾼입니다. 남들 잘 된 것만 보고 있습니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사는 것은 남을 이기려고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남보다 낫기 때문에 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사는 것은 하나님이 나만이 살아야 할 이유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인정하시고, 나를 부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여기에는 비교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나를 평가하지 않습니다. 나는 나입니다. 못난 나도 나이고, 부족한 나도 납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살 이유를 주셨기 때문에 기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38년된 병자는 무엇을 기대했을까요? 그 사람은 자신 앞에 서 있는 분이 자신을 가장 먼저 연못에 넣어 주기를 바랐을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도 남들보다 앞서 제일 먼저 연못에 들어가서 병이 낳게 되었다는 것을 자랑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38년 된 병자에게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이 어떤 의미일까요?


“비교하지 말아라. 울지도 말아라. 원망하지도 말아라. 한숨을 내 쉬지도 말아라. 네 몸을 일으켜 세워라. 그곳을 떠나라. 네가 살아야 할 삶의 자리는 그곳이 아니다.”


38년된 병자는 육체적인 병보다 마음의 병이 더 깊었습니다. 그는 병든 마음으로 38년을 살았습니다. 그는 핑계와 비교에 너무 깊이 젖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난 이후 핑계와 비교 의식이 더 이상 그를 사로잡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태어나게 하셨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향한 분명한 삶의 이유와 목적을 가지고 계십니다.


지금 우리는 어디에 앉아 있을까요? 원망, 자책, 후회, 한숨, 불평, 미움, 핑계 등과 함께 하고 있지는 않나요? 38년 동안 누워 있어 관절이 다 굳어버린 이 사람, 자기 힘으로는 도저히 일어설 수 없는 이 사람이 ‘일어나라’는 주님의 말씀에 일어났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믿으면 변화가 생깁니다.


베데스다 연못가에 앉아 하염없이 물을 바라보고 있던 병자를 향한 예수님의 외침은 '지난 38년간 하루하루 서서히 잃어버려졌던 자아(自我)를 되찾고 더 이상 네 인생의 구경꾼이 아니라 네 삶의 주인공으로 다시 일어나 전진하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자유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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