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경외할 때 세상이 두렵지 않습니다
이번이 두번째 입니다. 아브라함은 이전에 애굽(=이집트)에서 아내 사라를 자기 누이라고 했었습니다.(창세기 12:10-20) 아브라함은 그랄 땅에서 또다시 아내를 자기 누이라고 합니다.(2절) 사라가 아브라함의 이복 누이이긴 합니다.(12절) 그러나 아브라함이 사라를 누이라고 한 것은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지켜주실 것이라는 믿음보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이 자신을 죽일 수 있다는 불안이 컸기 때문입니다.(11절)
세상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11절) 이런 세상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깊은 신앙심)하는 사람으로 살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자기 안위를 위하여 짓는 죄(들)는 결국에는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어쩌자고 그런 짓을 했느냐?"는 그랄왕 아비멜렉의 꾸짖음을 들어서야 하겠습니까?(10절, 공동번역)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내면에 자리잡은 죄와 연약함을 모두 처리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의 반복되는 죄와 잘못을 보면서, 나에게도 반복하여 행하는 잘못이 있는지를 살펴봅니다. 내면에 자리잡은 죄와 연약함이 있는지를 살펴봅니다. '어쩌자고 그런 일을 했느냐?'고 책망받을 만한 일(들)이 있는지를 살펴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도와주시고, 보호해 주신다!' 이 사실에 근거한 생각과 말과 행동을 하며 살도록 하나님이 우리를 도와주시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할 때 세상이 두렵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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