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인 겨울이 찾아올 때
수전절이라는 절기가 있습니다.(22절) 수전절은 구약성경의 일곱 절기는 아닙니다.(레위기 23:1-44)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의 기록 사이에 약 400년의 공백이 있습니다. 그 기간 중에 이스라엘의 신앙 중심지인 성전이 이방 왕(안티오쿠스 4세)에 의해 극도로 더럽혀진 일이 있었습니다. 그것에 대항하여 마카베오 가문을 중심으로 성전을 회복하고 정화한 일이 있었는 데(164 B.C), 이것을 기념하여 ‘수전절’이라는 절기를 지키게 되었습니다.
수전절과 겨울은 무슨 관계가 있을까요?(22절) 수전절은 겨울인 12월에 지킵니다. 이스라엘이 더운 나라이기는 하지만 겨울에는 난방이 필요할 정도로 춥다고 합니다. 그러나, 사도 요한이 ‘겨울’이라는 말을 집어 넣은 것은 단지 ‘계절적인 겨울’을 가리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영적인 겨울’을 가리키기 위해서 입니다. 이방 왕 안티오쿠스 4세의 종교 탄압으로 유대인들은 가장 칠흑 같은 어둠과 죽음의 시간, 곧 ‘영적인 겨울’을 보냈습니다.
우리에게도 ‘영적인 겨울’이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고난과 실망과 분쟁과 게으름 등의 여러 통로를 통해 사탄은 우리의 믿음과 가슴을 냉랭하게 만듭니다. 목회자로서 ‘이전처럼 믿음의 열정이 생겨났으면 좋겠습니다.’라는 말을 들을 때 가장 가슴이 아픕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를 수 없이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할 뿐입니다. 은혜와 사랑을 주시는 하나님과 불과 같은 믿음의 근원이신 성령님이 도와주시기를 기도할 뿐입니다.
영적인 겨울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선적으로 할 일은 내가 누구를 좇아가고 있는가를 살피는 것입니다. ‘내 삶이 분주한 진짜 이유가 무엇일까, 나의 삶의 목표는 정말 무엇일까, 내가 얻은 구원은 나에게 얼마나 소중하고 어떻게 보답하고 있나’ 등의 질문들을 통해 자신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죽음으로 우리 죄를 용서하시며 우리에게 영생을 주셨고, 다시는 사탄의 권세에 우리를 빼앗기지 않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28절).
우리는 예수님을 '자신의 주인'으로 고백하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이것은 우리 인생의 엄청난 사건이자, 변화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주인이시기에 우리는 그분의 말씀을 듣고 순종합니다. 예수님께 순종하는 것은 굴종이 아니고, 인간의 본연(곧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이요, 행복으로 이르는 길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선한 목자라, 우리를 양이라 비유하셨습니다(11절). 양들은 앞서가는 목자의 음성을 듣고 그 뒤를 바싹 따라갑니다.
예수님의 음성을 듣는다는 것은 우선 말씀에 익숙해진다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자주, 그리고 반복해서' 말씀을 보지않으면 예수님의 음성과 뜻을 알 수 없습니다. 우리가 매일 성경말씀을 묵상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매일 많은 외부 정보와 마음 소리를 듣고 살지만, 묵상으로 예수님의 음성에 익숙해집니다. 예수님은 "내 양들을 안"다고 말씀하시는 데(27절), 우리는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을 안"다고 말할 수 있나요?(14절)
예수님은 양을 위해 자신의 목숨조차도 내어 놓으셨습니다(15절). 이 말씀을 통해, "내가 너를 위해 나의 목숨을 준 것을 기억하고 있느냐?"는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사랑의 음성을 듣습니다.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님의 사랑이 가슴에 가득차면 불편한 것들, 부족한 것들, 그리고 불행한 것들 조차도 견딜 힘이 생깁니다. 그것들 없이도 살아가는 법을 체득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면 방황하지만, 음성을 듣고 따르면 행복합니다.*
공동체 성경읽기
요한복음 10장 읽기 (https://youtu.be/GJQJXQ7AFVY?si=pHO6raRVou1AKDcI)
요한복음 전체 읽기 (https://youtu.be/2UD9qiRp6B0?si=DNuKfuAln-0SSf-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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